때때로 ‘인자.”(ó viòS’ TOV ιθ vv- 호 휘오스 투 안드로푸)는 다른 헬라어 번역본의 배후에 동일한 아람어 표현(째j 그-바르 나사)이 있다고 단정함으로써, 2:27 의 “사람과 동의어로 간주되었다. 어떤 견해에 따르면,2:27(6/1θwπ S’- 안드로포스)은 2:28 에서는 “인자”로 오역된, “인류”를 뜻하는 아람어 관용구를 올바르게 번역한 것이다. 따라서 2:28은 논리상으로 2:27 의 결론이다. 만약 안식일이 ‘사람”을 위하여 창조되었다면 (2: 27), 당연히 “사람”이 “안식일의 주인”이라는 결론이 나오게 된다(2 :28).

그러나 이 독법은 “예수를 포함하여 그 어떤 유대인 교사에게도 생각조차 할 수 없는” 지위를 표현한다(Beare, JBL 79[1%OJ 130-56). 그러므로 베어(Beare) 는 비록 결론에 있어서는 다르지만, 맨슨(T, W. Manson) 처럽 “인자”가 2:27-28 의 올바른 번역이며, 그것은 이스라엘을 뜻하는 집단 용어(Manson, ConNT 11 [1947J 138-46) 라기보다는 오히려 “인칭대명사 “나”의 대용”(18L 79[1960J 131-32) 이라고 논증하고 있다. 이러한 의미에서 예수(또는 초대 교회)는 안식일이 “인자 즉 “나”를 위해서 만들어졌으므로 즉 “나”가 안식일의 주인이라고 선언했다. 이러한 추정은 아랍어로 기록되었다고 판단되는 2:27-28 의 논리를 설명해 줄 수는 있으나, 동일한 아랍어 표현과 취지를 지니고 있는 말을 “사람” 혹은 “인재로 번역하고 있는 희랍어 번역본들에 나타나는 차이를 설명하지 못한다. 우리는 여전히 희랍어 본문의 표면상의 불합리 한 결론(non seqitur) 에 봉착해 있다

논리상의 문제는 대다수의 주석가들처럼 “인자”를 명목상의 메시아 칭호로서 간주하고자 할 때 더욱 악화된다 케제만은 인자 언사가 쉬바이쩌 (Schweizer, 1)가 2:27 의 “무시무시한” 증언이라고 부르는 것에만 제한적으로 적용되고 있다고 주장하고 있다. 달리 말하면 2:27은 안식일에 관한 인간의 자유의 일반적인 원리를 제공하는 반면에, 2:28은 이 자유의 범위를 인자의 권세 있는 행동에 국한시키고 있다 그러므로 인자는 제자들(공동체)의 행동을 궁극적으로 허락하는 권세의 인물(Tödt, Son of Man, 131) 을 뜻한다. 그러나 이러한 번역은 2:28을 도입하는 호스테(삶Té) 가 제기하는 논리적인 장애를 무시하고 있다. 만약 “인자”가 권세를 나타내는 메시아적 칭호라면, 안식일은 “사람”을 위하여 만들어졌기 때문에,  “인자”가 안식일에 관한 권한을 지닌다고주장하는 것은 거의 의미가 없다.

그러나 만약 “인자”(ó 바Ò<; TOû JTTOV 호 휘오스 투 안드로푸)가 문자적으로 2:28 의 배후에 있는 아람어 바르 나사(~WJ 그)의 번역이며, “사람” (dιθwπ S'- 안드로포스)이 문자적으로 2:27 의 배후에 있는 아랍어적 표현을 번역한 것이라면, 시편 8:4와 같이 희랍어와 영어에서는 발견할 수 없는, 아람어 표현에서 나타나는 언어적 유희일 7}능성(예를 들연, “사람 “인자": Roloκ KefJ!聊, 61-62) 을 생각할 수도 있다. 전자로 해석하면 이 말들은 동의어적 병행법으로 안식일이 ‘사랍 을 위해서 만들어졌으며, 따라서 인자(=“사람” 혹은 “인간." 참조. 시 8:4) 가 안식일에 관한 권세를 지니고 있음을 선언하는 것이다. 후자로 해석하면 이 말들은 “인자"( =“나”라 238 마가복음 2: 23-28는 자기 칭호)가 안식일에 관해 권세를 지닐 수 있도록 하기 위하여 안식일이 “사람”을 위하여 만들어졌음을 의미하게 된다. 전자는 안식일에 관한 권세를 인간에게 부여하고 있는 반면에, 후자는 예수께 권위를 부여하고 있다. 그러나 “인재(뼈J ..,그-바르 나사)의 모호성으로 인해서 2:28 의 권세의 주장은 2: 1O(참조. 마 9:8) 보다 훨씬 더 비밀로 되어 있다(Roloff, Kel 13, 61-62; Grundrr , 93-94) .

언어적 유희가 희랍어에서는 나타나지 않는데, 이것은 마태복음 12 장과 누가복음 27장이 생략하고 있는 이유를 설명하는 데 도움이 된다 그러나 마가는 “인자”를 예수에 의해 사용된 실질적인 자기 칭호로 이해했을 것이다(2: 10에 대한 ‘주석’
참조). 이것은 또한 마가가 “메시아적 은닉”에도 불구하고 여기에서 (2 10 28) 공공연하게 이 칭호를 사용할 이유를 설명해 줄 수 있다. 2: 10과 2:28에서 예수께서는“인자로서” 자신의 전권을 주장하고 계신 것이지 “인자가 됨으로 인해서” 전권을 주장하시는 것은 아니다.

2:28에 대한 이러한 독법은 또한 2:27 의 의미를 설명해 준다. 2:27은 인간의 자유를 안식일에 좋아하는 것을 행할 수 있는 가능성으로 주장하는 바리새인들을 향한 독립적인 대답이기보다는 오히려, 안식일을 하나님이 피조물 즉 “사랍”을 위하여 만드신 규정으로 확증한다. 그러나 사랍들이 어떻게 행통해야 하는7}에 대한 지침을 제공하거나 바리새인들의 질문에 대한 구체적인 답변을 제공하는 것은 아니다. 2:27은 단순히 2:28 의 주장의 배경을 제공해 줄 뿐이다.

그 당시의 유대교는 안식일이 “사람”( =이스라엘) 을 위해 하나님께서 만드신 선물이라는 2:27 과 크게 다른 주장을 하지 않았을 것이다. 이스라엘은 한 걸음 더 나아가 하나님의 창조의 질서의 일부인 안식일을 어떻게 사용하여야 동}는가를 알고자 했을 것이다. 그러나 그 당시의 유대교는 “인자”( =사람) 혹은 “내”( =예수)가 안식일의 주인임을 선언하고 있는 2:28 의 잇따른 주장에는 상당히 반대했을 것이다. 그러므로 2:28은 2:27 과 함께 바리새인들의 질문에 대한 대답이며, 제자들의 행동을 2:7 에 있는 자유의 원리보다는 2:28 에 있는 “인자”의 전권주장에 근거하여 설명한다. 부수적으로 2:27-28은 2:25-26 의 대답과 상호 관련을 맺게 된다. 다윗이 스스로의 권세를 가지고 행할 수 있었던 것과 마찬찌로 “인자”( =예수)는 제자들에게 안식일에 해서는 안 되는 일을 허용할 수 있는 권한을 지닌다(2:27-28).

두 답변 (2:25-26 27-28) 모두 예수를 제자들의 행동의 근거로 지적하고 있다. 그러나 예수께서 어째서 제자들이 안식일을 위반하는 것을 허용하셨는가를 알기는 힘들다. 우리가 말할 수 있는 것은 예수의 생활 방식이나 제자들의 생활 방식이 모두 율법 폐기의 경향을 보이고 있지 않으며, 비록 우리들의 지식이 제한되어 있기는 하지만, 초대 교회의 안식일 관행 역시 안식일에 대한 교만한 접근을 보이지는 않는다는 것이다(Rordorf, 5unday, 80-138: Kuhn, S. 1II11 ‘en, 77-80). 따라서 예수께서 자기 자신을 위해서나 혹은 자신의 일행들을 위해서 안식일 율법을 원리상으로 폐지 하시려 했다고 간주할 어떤 근거도 없다.

이 문제의 해결은 다른 안식일 논쟁에서 찾아야 할 것이다. 다른 모든 안식일 논쟁에는 치유 사역으로 인해 적대자들과의 논쟁을 발생시키시는 예수님이 등장하고있다(3 :1-5// 마 12:9-14// 녹 6:6-11: 13:10-17: 14:1-6: 요 5: 1-16: 9:1-38). 예수
의 사역은 안식일 율법보다 우위에 있다(참조. 3:1-5). 마찬가지로 다윗과 동등한 자격을 지닌 존재인 예수께서는 2:25-26 과 2:27-28 에서 안식일에 관한 권한을 주장 하신다. 마태복음 12:5-7 은 제사장들의 안식일 사역과 예수의 사역을 비교함으로써 동일한 사실을 논증한다. 그러므로 맨슨(뼈nson) 이 제자들은 예수와 함께 “천국의 선교 사역”을 위해 이 곳에서 저 곳으로 여행을 하고 있는 중이었으며, 단지 “조용한 안식일 오후의 산책”(5a찌쟁~, 190) 중이었던 것은 아니라고 주장한 점에서는 옳을수도 있다. 특별한 사역을 위해서 권위를 부여받은 존재인 예수께서는 모든 것을 버려 두시고 자신을 따라 사역에 동참하고 있는 제자들(마 19: 27) 에게 인간을 위해 만들어진 안식일에 굶주림을 해결하기 위해서 밀을 자를 수 있도록 허락하는 권세가 있음을주장하셨다

안식일‘에도”(κα(- 카이) . 어떤 학자들은 이 말을 2: 10에 있는 인자의 말과 연관시킨다(예를 들면, , S. 1II11ungen, 73). 페쉬 (Pesch, 1: 185) 는 “안식일에도”를 창조시에 “사람”에게 주어진, 창조 이전의 날들뿐만 아니라 안식일을 포함하는 마지막 날에 관한 권한과 연관시키고 있다. 그러나 만약 우리가 2:27-28을 아람어 표현상의 언어적 유희로 간주한다면 카이(따)는 “이러므로”를 재차 강조하는 것이 된다. “안식일”이 “사람”을 위해 만들어진 것처럼 “인자”도 “안식일의 주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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