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 로마의 클레멘트(Clement)

주후 1세기말 로마의 유명한 장로로 사도 요한이 밧모섬에 유배되어 있을때, 로마교회의 감독직을 수행하였습니다 로마교회 감독의 자격으로 고린도교회의 질의에 회신한 글들이 전해져 내려오고 있습니다 그의 서신은 고린도교회의 분쟁에 관한 해결방안을 설명하는 과정에서, 신구약 성경과 바울서신을 다수 인용하였으며, 사랑과 겸손으로 그리스도를 본받아 서로 화목하고 장로와 집사들에게 순종할 것을 권면하고 있습니다 그의 신학적 경향은 사도바울적이며 특히 이신득의(以信得義)사상이 뚜렷하게 나타나 있었습니다

2-2. 안디옥의 이그나티우스(Ignatius)

주후 30~35년에 출생하여 “하나님의 사자” 라는 별명을 갖고 있었던 이그나티우스는 107~115년 트라얀 황제때 안디옥 감독으로 봉직하던 중 사자의 밥이 되어 순교하였습니다 그는 순교의 땅 로마로 향하면서 일곱개의 서신을 남겼는데 이것은 초대기독교 역사를 살펴보기 위한 가장 중요한 기록이 되고 있습니다 그것은 서머나에서 에베소, 막네시아, 트라리아, 로마 등지로 보내는 서신과 드로아에서 빌라델비아, 서머나 교회로 보낸 서신, 그리고 폴리갑에게 보낸 7편의 서신인 것입니다

그의 서신에는 당시 안디옥교회 내에 몇개의 분파가 있었으며 감독한 그가 이단적이라고 생각한 교리들을 맹렬히 반대하였음을 알 수 있었습니다 따라서 그가 이교도들에 의해 고발되었는지, 혹은 그의 반대파들에 의해 고발되었는지는 확실치 않은 것이었습니다 그러나 이러한 일들로 인하여 그는 열명의 군인에 의해 포박된 채 로마로 압송되어 유죄 판결을 받아 로마에서 처형되었던 것입니다

이그나티우스는 압송되어 가는 도중 여러 신도들과 만나 대화할 시간을 가지게 되었으며 또한 그가 구술하는 서신을 받아 쓸 비서까지도 대동할 수 있었습니다 이 서신을 통해서 당시 로마 전체에 걸쳐 기독교인들에 대한 박해는 없었슴을 알수 있으며 단지 법원에 소환된 자들에 국한하여 재판을 받았슴을알 수 있었습니다 이그나티우스의 서신은 이러한 압송과정에서 이루어진 면회의 결과인 것입니다

또한 그의 서신에서 바울의 몸으로서의 교회관과 요한의 화육관의 조화를 엿볼 수 있었습니다 특히 “가톨릭 교회” 라는 단어를 처음 사용하여 교회의 조직을 강조하였으며, 박해를 받았을때 교회의 보루로서 감독의 중요성을 말씀하고 있었습니다 또한, 그에 의하여 처음으로 감독은 장로의 직에서 분리되어 장로를 대표하는 직분으로 주장하였습니다

이그나티우스의 서신에 나타난 공통적인 주요사상은 이단을 경계하고 교회의 조직적 통일과 감독의 권위에 대한 승복, 그리고 순교자의 영광이었습니다

2-3. 폴리갑(Polycarp)

폴리갑은 사도 요한의 제자이며 이그나티우스의 친구이고 서머나 교회의 감독으로 이레니우스(Irenaeus)의 스승이었습니다 사도 요한의 제자로서 사랑의 감독으로 존경을 받았으나 이단학자에 대해서는 단호한 입장을 취하였습니다 일례로 폴리갑은 당시 로마에서 활약한 마르시온(Marcion)을 가리켜 사단의 장자라고 말할 정도로 단호하였으며, 빌립보 서신에서도 강경한 태도를 보였습니다

그의 서신은 구약보다 신약을 많이 인용하였는데 이러한 점이 정경사에 중요한 자료가 되고 있는 것입니다 155년경 까지도 플리니에게 준 트라잔의 지시는 유효하였습니다 기독교 신자들을 억지로 색출하지는 않았으나 일단 고발되어 체포된 후에는, 로마의 신들에게 강제적으로 예배를 드려야 했습니다 만약에 로마의 신전에 예배하기를 거부할 경우에는 반드시 처벌하였습니다 폴리갑 또한 로마의 정부로 부터 자유로운 감독은 아니었습니다 그 또한 로마 당국에 의해 체포되어 재판을 받게 되었습니다

재판관은 폴리갑이 황제를 두고 맹세하고 그리스도를 저주하면 석방하겠다고 약속하였으나 폴리갑은 이에 대하여 “내가 86년 동안 그를 섬겼으나 나를 한번도 저버리신 적이 없다 어떻게 나를 구원하신 나의 왕을 저주할 수 있겠느냐” 라고 신앙고백을 하였습니다 재판관이 그를 산채로 태워 죽이겠다고 협박하자 폴리갑은 “재판관이 붙인 불은 순간이지만 지옥의 영원한 불길은 꺼지지 않는다” 라고 대답하였으며 그는 히에라폴리스의 감독 파피어스와 함께 버가모에서 순교를 당하였습니다

2-4. 파피아스(Papias)

브루기아 지방 히에라폴리스(Hierapolis)의 감독 파피아스는 2세기 중엽까지 교회에서 봉사하다가 폴리갑과 함께 버가모에서 순교한 것으로 전해지고 있습니다 그는 사도들과 그 제자들의 구전을 모아 5권으로된 “주의 가르침의 설명” 을 기록하였습니다 이 책은 지금 현재 전해져 내려오고 있지 않으나 이레니우스의 글과 유세비우스의 역사에서 인용되고 있으며 마가가 베드로로부터 그의 복음서 기록을 위한 자료로도 활용하였다는 사실도 거기에 기록되어 있었습니다 그의 책에는 천년왕국론을 자세히 설명하고 있으며 이것은 2세기의 교회가 천년왕국을 신앙하고 있었슴을 암시해 주는 대목이기도 한 것입니다

2-5. 바나바스(Barnabas)

바나바스는 알렉산드리아의 유대인으로 주후 70~120년 사이의 인물로 추정되나 그에 대한 기록과 사적이 없기 때문에 누구인지는 정확하게 밝혀지지 않고 있습니다 이것은 어떤 특별한 교회에 보낸 것이 아니라 유대주의의 오류에 빠져가는 기독교인에게 보낸 서신으로 신약의 히브리서와 유사한 성격을 지니고 있습니다 그래서 히브리서를 바나바에 의해 기록된 것으로 보는 견해도 있습니다

2-6. 헬마스(Hermas)

유세비우스와 오리겐에 의하면 헬마스는 바울의 친구이며 로마서 16장 14절에 있는 헬마스와 동일인라고 하는 견해가 있습니다 또한 다른 한편으로는 무라토리 단편에 나타난 무명의저자(170년)에 의하면 로마 파피아스 감독의 형제라고 하는 견해도 있지만 두가지 다 확인된 것은 아니었습니다

헬마스의 저서로는 “목자” (Shepherd)가 있습니다 말세문학으로 비전과 생활훈과 비유로 엮어진 책으로 율법주의적이고 야고보서적 성격이 강한 것이 특징입니다 또한 공로의 신학을 가르치고 순교의 속죄적 미덕(贖罪的 美德)을 가르치며, 예언적 은사와 금욕주의를 강조한 점에서 몬타너스 사상과도 유사한 점이 있습니다 그러나 재혼(再婚)과 재회개(再悔改)를 허락한 것으로, 후에 몬타너스 사상에 심취된 터툴리안으로 부터 비난의 대상이 되기도 하였습니다

2-7. 디오그네투스(Diognetus)

이 서신은 1592년 헨리 스테판(Henry Stephan) 이 순교자 저스틴(Justin)의 이름으로 헬라어와 라틴어로 출판하여 일반인에게 보급한 것으로 저자가 분명하지 않으며 일각에서는 마르쿠스 아울렐리우스(Marcus Aulerius) 황제의 스승으로 보는 견해도 있습니다

12장으로 구성된 이 서신은 이교도의 철인에게 기독교의 진리를 소개한것으로 기독교의 교리와 예배가 헬라종교와 유대교의 것과 비교하여 얼마나 다른 것임을 지적함으로 기록되어져 있습니다 우상의 헛됨(2장)과 유대교의 미신(3~4장)에 대하여 기독교의 산 진리(5~6장)와 그리스도의 재림(7장)을 설명하고, 그리스도의 오심에 대한 목적과 성도의 축복(8~10장), 그리고 낙원에 이르는 믿음(11~12장)을 소개하고 있습니다

구약의 인용이 거의 없는 점과 바울신학의 영향이 지배적이라는 점에서 특징적인 것입니다 사도적 교부의 글 가운데 가장 사상이 풍부하며 문장이 세련되고 설득력이 있습니다 당시의 엘리트 계층에게 보낸 전도서신이기 때문에 당시 기독교인 가운데 최고 지성의 대변자가 집필했음이 분명한 것입니다

2-8. 디다케(Didache)

“12사도의 교훈집” 으로 알려진 이 서신은 오래동안 매몰되어 있다가 1873년 예루살렘에서 발견되어 1883년에 출판된 것으로 2세기 초에 알렉산드리아에서 기록된 것으로 추정하고 있습니다 세례를 받으려는 사람들을 위하여 기독교 입문서로 쓰여진 글로 기독교인의 윤리와 예배의식, 권징과 주의 재림을 대비하는 권면 등 세부분으로 나뉘어져 있습니다 이 책은 사상면보다 초대교회의 예배모범과 생활상을 알게하는 사료로서 가치가 인정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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